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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뉴턴의 아틀리에, 김상욱, 예술의 상호작용과 뒤샹의 전복

책 : 뉴턴의 아틀리에 / 글쓴이 : 김상욱, 유지원

김상욱씨 이름으로 도서관에서 검색 후 빌려온 책이며 이중 "예술의 상호작용과 뒤샹의 전복"을 읽었다.

생각 :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에 대해 입체파 작가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그 당시 문화적 이류 국가였던 미국에서는 이 작품을 인정하게 된다. 그 후 뒤샹이 1917년 뉴욕 한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이 "샘"이다. 미술교육에서는 '레디메이드'라는 용어와 함께 소개되고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할 때에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예술이 가진 고결함만을 떠올리던 나도 뒤샹의 작품과 더불어 앤디 워홀의 상업적인 작품 활동, 바스키아가 얻은 인기의 문화적 배경 등에 대한 글을 읽으며 그 특별함에 대한 믿음은 많이 흔들리게 되었다. 

 김상욱씨는 믈리학자들이 자연법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는 대개 그리스의 미학 속 수학적 비례와 조화를 염두에 둔다고 말한다. 그래서 물리학자에게 "샘"은 아름답지 않다고 재치있게 소개한다. 김상욱씨는 자기 분야인 물리학을 글이나 설명에 참 재치있게 활용하는데 글 속에 매번 물리학이라는 강한 향이 나는 허브를 조금씩 고명처럼 얹으니 글이 질리지 않는다. 나는 고수라는 식물을 씹어먹지는 못하겠지만 국물에 빠트려서 국물에서 은은한 고수 향이나는 것은 좋아하는데 딱 물리학이 고수같다.

 뒤이어 글에서는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감성이 지배하는 미적 판단에 대해 객관적 분석이 가능하다고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별을 보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별은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예술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작품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천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샘"의 예술 여부에 대해 '예술에 대해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윌리엄 웨이츠, '예술이 무엇인지는 예술계(예술가, 평론가, 미술관, 경매장 등 작품과 상호작용하는 주변 환경이 정한다'는 조지 디키의 견해도 등장한다. 둘이 다른 견해인듯 보이지만 둘 다 공통적으로 가변성을 지닌  견해라는 점에서 한 반직선 위의 다른 눈금에 있는 말 같기도 하다. 

 반면, 나는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에 대해 "소변기만 제출했는가", "소변기에 'R. MUTT 1917이라는 글씨를 써서 제출했는가" 여부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뒤샹이"계단을 내려온 누드"인기를 얻은 후에 제출한 작품이라는 점도 중요한 요소같다. 

 마치 뱅크시처럼 뒤샹의 출품작인지 눈치채기 어렵도록 의도한 것이고 더군나나 뒤샹이 R.MUTT라는 이름에 별 뜻이 없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그 영향력마저 별로일 수는 없다. 뒤샹이라는 관심을 받은 예술가, 브랜드 파워를 가진 사람이 했기 때문이다. 뒤샹이 남의 작품인 양 자기 이름 대신 다른 이름처럼 보이는 글씨를 소변기에 쓴 행동은 소변기라는 소재와 동등하게 발칙한 행위 예술이어서 둘 사이에 균형감마저 느껴진다. 

 마치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작든 크든 같은 양말 하나를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일반 로고도 아니고 리미티드 에디션 로고인 셈이다.


 R. MUTT 1917로 구글 검색을 하면 자동 검색에 R.MUTT 1917 스티커가 검색되고 R. MUTT 1917라는 이름을 가진 이탈리아 pistoia의 술집도 등장한다. 자기 집 변기에 R.MUTT 스티커를 붙인 사람까지는 오마주일까 싶지만 물병에 R.MUTT 1917 스티커를 붙인 사람도 있고 이미지 검색해서는 팔다리에 저 글씨를 타투로 새긴 사람도 여럿보인다. 저 글씨가 소변기에서 떼어져 나와 인기를 얻는 모습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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