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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광화문에서 퇴근 인파와 겹치느니 조금 늦게 가려고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고른 책이다. 이번에 6회에는 지원 작품들 다수가 인공지능을 소재로 썼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가 '지구에서 만난 외계 지능'이라고 했으니 소설 소재로도 좋을 수밖에 없다.

 뒤에 심사 위원 6명의 심사 평을 보는 재미가 있으나 읽으면 읽을 수록 약간 문학 작품같다. 문학 작품인데 문학 작품같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지금 수상작 중 대상과 최우수상 작품을 읽었을 때 그리고 뒤의 심사평을 보았을 때, SF-nal시리즈와 테드 창의 숨과는 다른 스타일로 느껴진다. 

  내가 SF-nal시리즈와 테드 창의 숨에서 발견한 재미는 '집요하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작가들의 미래 이야기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풍부한 기술 이야기가 흥미진진했을 수도 있다. 물론 SF-nal시리즈에서 기술을 다루지 않고 앞으로 우리 모습을 이야기하는 엘리자베스 베어, 푹신한 가장자리」도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재미가 있었으니 새로운 기술이 전부는 아니다. 

 심사 위원 중 한 분은 소재의 참신함보다 인물의 변화와 탄탄한 구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점을 생각하며 다시 수상작을 살펴본다면 지금까지 읽은 2편 중에서 우수상을 받은 박민혁씨의 두 개의 세계가 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박민혁 - 두 개의 세계

  코로나 바이러스가 장기적으로 이어지고 전염병이 반복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상식처럼 된 때에 인공지능의 발전 기세마저 가세하자 나에게도 우울함이 갑작스럽게 몰아쳤던 때가 있다. 그 때 나는 AI에게 대체되지 않는 직업군의 특성을 손꼽아보다가 문득 나무야 말로 대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무가 가진 묵묵한 시간의 힘은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나무처럼 시간의 힘을 새겨 놓은 나이테를 가져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일 때 나무를 떠올렸나보다.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나무가 된다. 이 상상 한 줄로도 재미있다.  바이러스로 말도 할 수 없고 가만히 서있는 나무가 되지만 나무라서 따뜻하게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주인공을 비롯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후반부에 잠깐 나오는 '지연'이란 인물이 제일 강렬하고 신선했다. 모과를 좋아하셨던 어머니가 작은 모과나무로 변하고 이 바이러스를 해결하려던 연구원인 딸인 '지연'은 동료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나무가 되는 게 나쁜 건가요?"

 "죽은 게 아니에요. 살아 있잖아요. 그런데 왜 나무가 되면 다 끝난 것처럼, 죽은 것처럼 말을 해요?"

 "사람일 때는 한 번도 피어본 적 없었던 꽃을, 열매를 맺고 저렇게 화려하게 섰잖아요."

 "난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요. 적어도 우리 엄마한테는, 나무가 된 것이 더 좋은 일이니까."

  '지연'도 결국 그 '엄마' 모과나무를 꼭 껴안은 채 나무가 되어 발견된다. 본인은 침엽수가 되었고 다른 구역에 옮겨 심어야 하지만 주인공은 그 규칙을 무시하고 그 두 나무를 함께 둔다. 그리고 가지에 걸려있던 연구소 직원증 대신에 모과나무가 된 엄마와 침엽수가 된 딸이 함께 찍은 대학교 졸업식 사진을 걸어준다. (마음이 찡하면서도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려져서 이 작가가 단편 책을 따로 낸다면 이 부분을 삽화로 그려서 표지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ㅎ)

  '지연'은 소설에서 유일하게 바이러스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인물이었고 주인공의 마음에도 변화를 준다.이외에도 원래 씨앗이 모든 사람의 몸 속에 있었을지 모르며 '불안'이 그 씨앗을 발아하게 한지 모른다는 등의 말은 그냥 던져지고 끝나긴 했지만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그리고 작가가 살짝 언급하고 끝난 것이 '이 나무가 되는 바이러스가 지구에게는 좋은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너무 짧게 한 줄로 지나간 듯한 이 문장이 사실 새로운 하나의 소설 덩어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새롭게 풀어가며 이야기를 써내려 가지 않고 끝내서 좋다. 나무가 되는 바이러스가 사실 지구에게 좋을 수 있다는 관점을 늘려가며 썼다면 이 소설이 이렇게 외로우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고 너무 교훈적이거나 쓴 소리하는 소설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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