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SFnal - 말카 올더, 튼튼한 손전등과 사다리

 Malka Older

Sturdy Lantern and Ladders

 프리랜서 해양 활동 연구자인 나탈리아가 "문어들의 기억을 이용해서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복원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이야기이다.

 글의 앞 부분은 동물을 이용한 실험에 대해 비판적이고 예민한 주인공의 말과 행동들,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들의 끔찍한 대우 등에 대해 자신이 크게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회의감 등이 주로 묘사된다. 동물실험에 대해서는 내가 아주 얕게 아는 분야인지라 주인공이 실험동물에 대해 느끼는 감수성이 남다르다고 느껴졌고 인상적이었다. 작가 설명을 보니 Malka Older는 구호활동가, 사회학자이고 2015년 카네기 국제 문제 윤리위원회의 선임연구원도 했다. 구호활동, 개발원조 분야에서 10년 이상 현장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글의 절반에 걸쳐서 그리고 이후에도 적지 않게 등장하는 문장과 표현에서 동물과 환경에 대한 섬세하고 강한 관심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를 넘어서서 오랜 시간을 연구한 사람 특유의 애정때문인 것 같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호주'를 검색해봤다면, '호주 여행'을 생각해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곳이다. 책의 주석에 따르면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면서 산호의 2/3이 손상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색을 잃고 하얗게 변해 버렸다고 한다. 

 소설로 다시 돌아오자면 주인공 나탈리아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 특별한 장치를 하고 문어와 함께 헤엄치게 된다. 문어가 환경오염으로 죽은 산호들의 흔적, 즉 백골처럼 되어버린 산호 속에서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기억이 나탈리아가 쓴 방수 헤드셋의 오른쪽 눈에 형상화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그 영상을 토대로 수심별 생물 종의 다양성, 산호의 분포 등을 파악해서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복원하려는 것이다. 나탈리아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 문어와 함께 헤엄치면서 문어의 기억으로 되살아난 형형색색의 과거와 눈 앞에는 없는 문어의 기억 속 다른 문어 무리들을 보게 된다. 주인공은 큰 상실감으로 흐느끼는데 그런 행동까지는 와닿으나 갑자기 말도 없이 프로젝트를 떠나 칩거하게 되는 행동은 사실 약간 극단적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나탈리아가 친구에게 자신이 늘 느끼는 절망감, 무력감을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요즘 환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느낄 만한 기분을 말하는 것 같아 공감되기는 했다.

 게다가 이야기를 처음부터 읽어 나가다 보면 앞 부분에서 문어와 수영하고 문어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나탈리아와 한마음이 된다. 그리고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 과거의 풍경, 과거의 친구들을 기억하며 깊은 물속으로 계속 헤엄쳐 들어가는 문어를 보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넷플릭스 나의 문어선생님을 본 사람이 이 소설을 보면 몰입하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이 나중에 마음을 추스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회사의 담당자에게 다시 연락을 하자 링고가 나탈리아를 찾는다는 말을 듣는다. 링고는 그 회사 사람들이 부르던 문어 이름이었고 문어의 말을 통역하는 기술까지 구현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새로운 산호가 이식된 현장에서 열린 축하 파티에 간 주인공은 잠시 나마 갑판 위의 많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문어와 함께 바다 속에서 단둘이 수영을 하게 된다. 이 부분이 글의 끝이면서 참 세련된 부분이다. 

 문어의 기억을 보여주던 장치에서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 새롭게 피어나는 낯선 산호들의 모습이 나타나는 동안, 산호들 사이로 물고기, 갯장어, 수많은 문어들이 헤엄쳐 다닌다. 주인공은 장치 너머로 담당자에게 예전과 다른 영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이게 뭐죠?" 나탈리아는 호흡기를 통해 물었다. "예전하고는 달라요." "아 그럼요." 귓속의 수신기에서 길크레스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은 문어 뇌의 다른 부분을 실험하는 중이거든요. 이건 링고의 상상인 것 같아요." 나탈리아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길크레스트의 말이 이어졌다. 

 "미래라는 말이죠."

 이 단편은 영화로 만든다면 대단한 시각적 충격으로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