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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피쉬 - 세대갈등에 대한 생각

 아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될 때면 20대에 겪었던 (남들에 비하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으나) 아빠와의 갈등에 대해 항상 되짚어 보게 된다. 다행히 사람의 생각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 잘 무르익고 새로운 출구가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아빠에 대해 생각할 때면 한참 전에 본 영화 "빅피쉬"가 떠오른다. 대학생 때 보고 시간이 꽤 지났으나 사람 뇌는 참 특이하다. 지금 나의 고민에 먼 옛날의 기억이 처방되고 있다.   

 아빠의 말이나 행동의 일부에 대해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부분, 아쉬운 부분을 그냥 전형적인 세대 갈등에 분류해보기도 했다. 그런 분류가 맞는 부분도 있지만 안 맞는 그릇에 넣어놓은 덩어리처럼 튀어나온 부분도 많았다. 차라리 세대 갈등이다라고 분류된다면 수많은 세대 갈등 경험자들과의 공감을 통해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튀어나온 덩어리들이 내 성격에는 꽤 크게 보인 것 같다. 나름의 대안으로 그런 부분은 '바꿀 수 없다'며 내가 포기하고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결혼하고 나서 내가 독립하면서 자연스레 갈등이 적어진 덕에 예전보다 '철든'사람처럼 된 덕도 크다.

 그러나 요즘은 "빅피쉬"가 떠오른다. 아빠의 "빅피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빅피쉬"는 처음 영화를 볼 당시는 졸았던 기억이 난다. 팀 버튼 영화이지만 팀 버튼같지 않은 낯선 분위기의 영화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줄 알았던 이 영화를 두 번째 맨정신에 보던 날, 엔딩 씬에서 느껴졌던 기분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감수성이 풍부하던 중1때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한 달 가까이 시달린 만큼이었다. 

 이 영화는 내 기억에 오래 머무르면서 드디어 어제 결론을 내렸는데 아빠의 "빅피쉬"를 믿어주지 않으면 나중에 아쉬울 것 같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믿어주지 않는 장면 말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들에 허풍은 섞여있었을지라도 많은 부분이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믿지 않은 것이 속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나는 엔딩 씬에는 거의 영화 속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서 사실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보다 함께 이야기하고 아버지 이야기를 들어준 시간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속상함이 좀 덜하다)생각했다.

 물론 영화 또한 시간을 되돌려도 어쩔 수 없는 것은 같다. 앞으로 돌려봐야 아버지가 허황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만 반복된다. 주인공과 영화는 엔딩을 아름답게 그렸고 아들과 손자의 모습이 반복되며 아름다운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부분에 집중했던 것 같다. 그저 주인공처럼 뒤늦게 빅피쉬를 발견하고 싶지 않고 그 순간 주인공처럼 미소지을 수 없을 것 같다.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보며 아빠와 나의 생각이 다른 부분에 대해 "빅피쉬"를 떠올리는 것이맞는지 영화를 다시 보며 내용을 확인하기보다는 오늘 엄마,아빠와 펭귄네, 모두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할 때 어떤 것이 추억을 한 가지 더 만들까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이 더 귀해보인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빅피쉬"가 있다고 생각해보았다. 특히, 어른 세대의 생각이 답답한 관습이거나 더 낫다고 볼 수 없는 방법일 때가 있기도 한데 완전히 따를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적어도 우리 엄마, 아빠, 할머니의 빅피쉬는 항상 간직하도록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다.

  내가 엄마, 아빠, 할머니, 다른 누군가의 빅피쉬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않더라도 그 사람이 자기의 빅피쉬에 대해 들려줄 때면 귀를 바짝 들이대고 열심히 맞장구쳐주는 것이다. 연기가  섞일지라도 말이다. 영화의 환상적인 엔딩 씬을 앞으로 옮겨 장례식 이전의 씬들과 겹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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